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할 때, 막부의 전쟁은 성주만 잡으면 다른 성내 백성들은 살려주고 전쟁이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끝까지 저항하면 성내 모든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에도 왜군들은 조선의 왕, 선조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죽어라 한양으로 진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조선에 와보니 자신들의 상황과는 완전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이 도망을 간다는 것입니다.
왜군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은 왕이 도망해도 백성들은 그 왕에게 충성을 한다는 것입니다.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 의병들에게 수많은 패배를 맛 보았습니다.
그넣게 죽어라 올라간 한양, 그 기간은 20일 이았습니다.
당시 부산에 사는 양반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가는데 약 보름이 걸렸다고 하니 놀라울 뿐입니다.
각 지역의 전투를 다 치르면서 올라간 것이니 그 속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갔으니 꽤 지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부산에서 서울 거리보다 가까운 평양까지 가는데 40일이 걸렸습니다.
지원도 부족하고 지칠대로 지친 왜를 물리치기 딱 좋은 때였는데 그렇게 할 병력이 없었습니다.
대장군 신립이 탄금대에서 패전하고 전사를 해서 조선의 군을 통솔할 수 앖었을 것입니다.
왜의 한양 입성 시 백성이 선조가 도망하는 것을 보고 궁궐에 불을 질렀다고 하는데 어디를 불질렀다는 것인지?
한양궁궐 어디가 전소되었나?
당시 왜군의 기록에서 한양 궁궐의 아름다움을 남긴 것이 있었습니다.
입성할 때가 아니라 후퇴를 하면서 일부 불을 지른 곳은 있었습니다.
1군 고니시 가 후퇴 시에 종묘를 불태웠습니다.
그럼 한양을 불태운 것은 백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임진왜란에서 우리는 광해군을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쓸모 없는 조정의 관료들 때문에 영창대군을 죽이고 후에 인조반정으로 막을 내리지만 진정한 묭기를 가졌던 몇 안되는 조선의 왕이었습니다.
선조가 한양을 도망치며 광해를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또 평양을 도망치며 분조를 명하고 의병을 모아 왜란을 막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의주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광해는 평양성 근처가 아닌 이천까지 15명의 관료를 데리고 갑니다.
그러자 그 소식에 도망쳤던 조선군과 의병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광해는 직접 경상도와 전라도를 다니며 의병을 모았습니다.
백성이 광해를 따르자 선조는 그때부터 그를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사에서 왕이나 세자가 칼을 들고 전쟁터를 누빈 것은 광해가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광해보다 대신들은 중국을 보고 절하고 만력제에게 감사를 했습니다.
이때 명나라 왕이 바로 신종 만력제입니다.
조선이 위험해지면 왜가 압록강을 넘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 압록강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지원군은ㅅ 보내게 됩니다.
그태에도 선조는 계속 명 요동으로 가려고 했으나 만력제는 'NO' 합니다
'왜 온다는거야?', 만력제는 지원군을 보냈지만 선조를 의심합니다.
만럭제의 지원을 가지고 조선의 사대부들은 한참 동안 제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운이 없던 천재, 광해는 진정한 임진왜란의 충신이자 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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