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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사전

내가 어렸을 때는

저의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날에는 상의 왼쪽 주머니에 이름표와손수건을 달았습니다. 그때 친구 중에는 코를 흘리는 친구가 여럿이 있었습니다. 코가 흐르면 소매로 '쓱~' 닦아버렸습니다.

그 당시 학교가 끝나면 동네 친구들과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했습니다. 겨울에는 밖에서 구슬치기를 많이해 손등이 트곤 했습니다. 때론 따듯한 물에 불렸다가 때를 벗겼습니다.

밤이되면 낯에 놀던 친구들이 저녁을 먹고 다시 모였습니다. 그리고 시작하는 것이 '다방구'였습니다. 어머니가 이름을 부르며 찾으러 오실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장남감은 딱지와 구슬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형들을 따라다니며 얻은 나무 토막을 가지고 직접 총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편을 나누어 그 총으로 총싸움을 했습니다. 그 전투에도 전술이 있었습니다.

서울 응암동 백련산 아래에 살았는데 그때는 그곳이 서울의 변두리였습니다. 백련산을 넘어 홍제동에 사는 친구들을 보러 간적도 있었습니다. 소풍은 백련사 아니면 서오능이 다 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대한 동경도 컸지만 멀리 가지는 못 했습니다.

여름에는 지금 숭실대 근처에 있는 냇가에 가서 멱을 감았습니다.



멱이란 말은 미역에서 왔고, 미역은 목욕에서 왔다고 합니다. 물에서 빨가 벗고 물장구치고 노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친구 몇 명과 집에서 삽과 양동이를 들고 화전, 지금 일산부근에 갔습니다. 그리고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게(경상도에서는 기라고 함)가 마구 나옵니다. 그놈들을 가득 잡아 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단에 풀어주고 키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뿌린 다음 날부터 집 화단에서 게를 보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부모님과 동생들과 처음으로 대한국장에서 하는 '공룡시대'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라는 것은 몇 년에 한번도 보기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많은 생각과 갈등을 겪는 사춘기를 가지며 아이라는 장벽을 넘은 것 같습니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님은 아이 취급을 하시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