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빌의 소설 '백경
모비딕'은 스릴보다는 지루함이 있는 소설입니다.
거대한 향유고래 모비딕을 쫓는 피쿼드 호의 선장과 선원들,
결국은 선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쿼드 호의 선원들은 해저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현명했지만 선장과 대립적인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170년 후 스타벅스라 사명으로 등장합니다.
포스터는 영화 'HEART of the SEA'는 모비딕을 탄생시킨 에식스호에 대한 것입니다.
1800년도 영국과 미국의 거리를 밝힌 등불의 기름은 고래기름이었습니다.
깊은 바닷속을 누비면 다니다가 나이가 들면 하얀 표피를 보이는, 그래서 백경이라는 이름도 붙여진 향유고래기름이 원료였습니다.
향휴고래를 잡기 위한 포경선이 1850년도 경에 미국에서만 700척이 되었다고 합니다.
경제지표와 물가가 고래기름에 따라 달라지던 시기였습니다.
1854년 미국의 한 연구실,
캐나다 물리학자이자 지질학자인 아브라함 개스너가 등유를 발명합니다.
등유는 땅속에서 흘러나오는 원유를 증류해서 만들어 낸 원가가 매우 낮지만 효율은 매우 좋았습니다.
1857년부터 미국에서는 유정을 개발하기 위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굴착기.
돈 많은 조지 뷔셀이라는 투자자는 유정개발 투자자를 모았습니다.
웬걸, 대박을 맞은 것입니다.
거기서 드레이커라는 사람을 고용해 탐사 기계를 사용해 21m를 굴착했습니다.
하루 45배럴을 생산했고 당시 배럴에 40달러였습니다.
드레이커가 '배럴'이라는 단위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드레이커는 자신의 유정 화재로 폭삭 망했고
조지 뷔셀은 죽는 날까지 세계의 기름이 바닥날 것을 염려하면서 죽어갔다고 합니다.
1859년 40달러의 기름은 전국에서 모여든 유정개발자들 때문에 1860년 10센트로 급락하고 맙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폭등과 급락을 밥 먹듯이 하고 있습니다.
1863년 주급 4달러를 받던 경리사원이었던 록펠러가 등장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오하이오주 석유정제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의 경영철학은,
"가장 어려운 경쟁은 강력하고 지적이며 보수적인 경쟁자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상태의 가격을 무시하는 사람으로부터 온다. 그 사람은 계속 가든지 파산한다."
그는 55세까지 전 세계의 95% 석유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악랄한 사업가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오늘날에 세계 최고 강국으로 만든 기반이 되었습니다.
록펠러가 53세가 된 해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습니다.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는,
“선생님은 55세를 넘기기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2년?
그 말을 들은 록펠러는 불안과 무상을 경험하며 병원에서 복도를 거니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병원 원무과 근처에서 크게 싸우는 소리에 근처로 갔습니다.
한명은 환자의 어머니같고, 또 다른 한명은 원무가 직원인 거 같았습니다.
언성을 높인 이유는 밀린 병원비를 때문으로 보였습니다.
환자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어린 소녀인데 지금까지 병원비를 못 낸 것 때문에 수술은 커녕 병원에서 쫓겨날 판이었습니다.
환자 어머니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애원하였지만, 원무과 직원은 냉정하게 나가라고만 했습니다.
록펠러는 갑자기 마음에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비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병원비를 다 내주고 앞으로 추가될 수술비까지 내라고 하였습니다.
단 모녀가 모르게 하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그 동안 수 많은 사람의 목숨까지도 사업을 위해 빼았던 그가 남을 위해 자기 주머니를 열었습니다.
55세에 죽는다던 그는 98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회고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저는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인생의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가운데 살았습니다.”
많은 교회 설교에서 십일조를 잘 내어 복 받은 록펠러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55세 이후에 변화된 록펠러였고 그 이전에는 십일조를 낼 위인은 아니었을 것 입니다.
1870년 드디어 록펠러의 야망을 실현시킬 기업이 탄생했는데, 바로 클리브랜드를 본거지로 한 스탠더드 오일입니다.
1872년2월 ‘클리브랜드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클리브랜드에 있는 26개 정제회사를 통합하는 작업으로 22개를 통합하였습니다.
클리브랜드를 손에 넣은 록펠러는 전국을 대상으로 똑 같이 하였습니다.
록펠러와 손을 잡으면 후하게 값을 쳐주면서 일도 같이 하였지만, 방대를 하면 파산할 때까지 괴롭히고 방해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 배울 점은 스탠더드 오일의 점 조직의 빠른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어느 한 정제회사를 타겟으로 하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중앙에 보고하고 전략적으로 접근을 해서 빼았었습니다.
스탠더드 오일은 철도국과 비밀거래를 성사시킵니다.
자신들과 경쟁사의 철도 운송료를 차별화 시키고(경쟁사가 20~30% 비싸게) 경쟁사의 철도요금 중 일부(수수료 명목 1달러당 25센트)를 스탠더드 오일이 챙겼습니다.
철도 운송료에 불만을 품은 정제회사에서는 송유관으로 운송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쉽지 않은 것이 온갖 방법으로 방해를 놓았기 때문입니다.
송유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스탠더드 오일은 철도회사를 사들이거나 송유관을 판매한 업자들을 괴롭혔습니다.
1879년 타이트 어터사가 50km를 넘지 못하던 송유관을 176km로 해안까지 연결을 해 버렸습니다.
록펠러의 경쟁상대는 석유 외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에디슨이었습니다.
1882년 전구가 발명되고 길거리와 집을 전기로 환희 밝히기 시작하니 등유의 판매는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세계시장에서 스탠더드 오일에 반기를 든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유대계 영국인으로 사무엘이라는 사람으로 ‘SHELL’이라는 조개 로고를 한 회사 창립자였습니다.
사무엘은 11형제 중 10번째였지만 똑똑하였습니다.
청년이었을 때에 그의 아버지는 영국 뒷골목에서 수공예품을 리어커에 싣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에서도 목돈을 만들어 사무엘에게 주며 “배를 타고 세계를 다니면서 사업 아이템을 찾아봐라”는 미션을 주었습니다.
인도, 동남아시아와 대만을 지나 일본을 구경할 때 일본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반짝이고 아름다운 조개 껍데기를 그냥 버리는 것을 봤습니다.
버린 조개껍데기를 가지고 수공예품에 장식을 하여 영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대박을 친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무엘은 조개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쉘의 로고도 조개 껍질이었고 최초의 유조선인 ‘뮤렉스’도 뿔고동의 이름을 땄습니다.
뮤렉스가 나오게 된 것도 동남아시장을 놓고 경쟁이 붙었을 때입니다.
스탠더드 오일에서 동남아까지 가려고 하면 아프리카 남쪽을 둘러 가야 했습니다.
사무엘 역시 그렇게 하면 공룡인 스탠더드 오일에 이길 수가 없어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유조선을 설계합니다.
뮤렉스은 유조선이며 최초의 유조선이 되었고 운송로에서 큰 차를 보여 스탠더드 오일과의 경쟁에서 이겼습니다.
1897년 쉘(SHELL)이라는 회사가 탄생했습니다.
1900년 세계 석유생산량은 43만 배럴이었고, 소련이 20만 배럴이고 미국이 16만5000 배럴이었습니다.
5년 후인 1905년 미국의 생산량은 37만 배럴까지 증산을 하게 됩니다.
바로 오클라호마의 대유전인 글린 폴 유전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이것 또한 스탠더드 오일을 어렵게 했습니다.
1895년 록펠러는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서류상으로는 경영을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1904년 스탠더드 오일에 대한 감정적인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났습니다.
그 발단은 이다타벨이라는 한 여기자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펜실바니아에서 석유 개척자로 있다가 쫓겨나 죽음을 맞은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기자로서 쓴 글이 전국으로 알려지는 것을 알았지만 언론을 과소평가했습니다.
결국 뇌물과 불법수단 그리고 특권 등으로 재판에서 패하게 됩니다.
1911년 미 연방 대법원은 스탠더드 오일을 해체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액슨, 모빌, 쉐브론, 그리고 아모코 등 30여개의 회사로 해체되었습니다.
이들 이름도 잘 알고 있는 100년 기업이 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석탄의 50%에 대한 운송과 판권을 가졌던 영국 처어칠은 1913년 영국 해군의 동력원을 석탄에서 나프타로 변경하였습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에 석유관련 첫 벤처기업(페르시아 석유회사, 현 이란석유)이 탄생하는데 1년 만에 재정난에 빠지고 처어칠은 51%의 주식을 사들이는 공격적인 투자를 합니다.
이 회사가 훗날 BP가 됩니다.
4차산업혁명 카운셀러, 정일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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