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섬 바람은 차게만 느껴졌다.
한 달 전 명량해전을 떠 올리면 아직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조선 수군에 남은 12척으로 남해안을 지키기는 어려워 계속 뒤로 쫓겨 갔다. 다다른 곳은 울돌목까지, 해협으로 조류가 빠르고 소용돌이가 쳤다.
일본해군 제독인 내도 도리는 이번만큼은 이순신을 꼭 잡겠다고 큰소리쳤다.
조선 수군은 12척이었지만 생소한 수로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울돌목에서 서로를 마주 보던 일본 전함은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일본의 수를 본 부하 장수들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오직 이순신장군이 탄 배만 홀로 들어오는 배와 싸우기 시작했다. 기록으로 보면 왜 수군은 133척에 약 8000명이 넘는 군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순신장군이 싸우는 것을 본 부하장수들이 합세를 하여 물살에 갈팡질팡하는 왜를 격파하였다. 133척 중 30여 척이 침몰당하거나 대파되고 나머지는 물러났다. 왜가 물러난 것까지가 명량해전의 대승에 대한 기록이다.
충청도까지 진격하던 왜 보병이 전라도 서해안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명량해전의 패전으로 분노하여 아산의 이순신장군 본가까지 자객을 보낸다. 본가에서는 막내아들 면이가 있었다. 가족을 보호하겠다고 왜군과 대적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이순신장군은 난중일기에 그때의 심경을 아래와 같이 썼다.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옳은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이것은 이치가 잘 못 된 것이다.”
아들의 전사 소식에 슬퍼할 틈도 없었다. 왜 수군은 재정비하여 이순신장군의 13척을 잡으러 진도로 왔다. 조선의 13척은 서해안이 왜 보병에 떨어지자 북으로 피하였다.
9월 중순 영광까지 올라갔다가 바로 군산 앞바다까지 올라갔다. 이때 비로소 왜군은 육군과 수군이 힘을 합쳐서 전라도를 손에 넣는다. 약 한 달간 전라도까지 바다는 왜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1597년 10월이 넘어 이순신장군은 진도로 내려와 불타버린 군영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설비관리를 하면서 Cost와 관계가 많은 것이 Stock이다. 공무부서는 Spare part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하고 관리부서에서는 자재 자체의 비용뿐 아니라 유지관리를 위한 비용이 들어가니 하나라도 줄이려고 한다.
공장을 운전한지 40년이 넘어도 아직도 적정재고, 적정 Spare part를 가지고 싸우고 있다. 또 한가지 Annual Shutdown (년차보수작업)이다. 수십 년을 했는데도 아직 데이터베이스가 없는 공장이 많다. 일상 정비했던 데이터와 연차보수작업 그리고 예방보전했던 데이터들이 관리된다면 전체 공장을 빠트리는 설비없이 관리가 되고 불필요한 작업은 안 하거나 주기를 늘려줄텐데,…
12척의 조선 수군이 울돌목에서 모든 것을 사용해서 싸운 후 바로 쳐들어오는 왜군에 대해서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예비군대가 없었고, 배를 수리할 수도 없었다.
스마트팩토리연구소
한 달 전 명량해전을 떠 올리면 아직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조선 수군에 남은 12척으로 남해안을 지키기는 어려워 계속 뒤로 쫓겨 갔다. 다다른 곳은 울돌목까지, 해협으로 조류가 빠르고 소용돌이가 쳤다.
일본해군 제독인 내도 도리는 이번만큼은 이순신을 꼭 잡겠다고 큰소리쳤다.
조선 수군은 12척이었지만 생소한 수로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울돌목에서 서로를 마주 보던 일본 전함은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일본의 수를 본 부하 장수들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오직 이순신장군이 탄 배만 홀로 들어오는 배와 싸우기 시작했다. 기록으로 보면 왜 수군은 133척에 약 8000명이 넘는 군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순신장군이 싸우는 것을 본 부하장수들이 합세를 하여 물살에 갈팡질팡하는 왜를 격파하였다. 133척 중 30여 척이 침몰당하거나 대파되고 나머지는 물러났다. 왜가 물러난 것까지가 명량해전의 대승에 대한 기록이다.
충청도까지 진격하던 왜 보병이 전라도 서해안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명량해전의 패전으로 분노하여 아산의 이순신장군 본가까지 자객을 보낸다. 본가에서는 막내아들 면이가 있었다. 가족을 보호하겠다고 왜군과 대적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이순신장군은 난중일기에 그때의 심경을 아래와 같이 썼다.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옳은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이것은 이치가 잘 못 된 것이다.”
아들의 전사 소식에 슬퍼할 틈도 없었다. 왜 수군은 재정비하여 이순신장군의 13척을 잡으러 진도로 왔다. 조선의 13척은 서해안이 왜 보병에 떨어지자 북으로 피하였다.
9월 중순 영광까지 올라갔다가 바로 군산 앞바다까지 올라갔다. 이때 비로소 왜군은 육군과 수군이 힘을 합쳐서 전라도를 손에 넣는다. 약 한 달간 전라도까지 바다는 왜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1597년 10월이 넘어 이순신장군은 진도로 내려와 불타버린 군영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설비관리를 하면서 Cost와 관계가 많은 것이 Stock이다. 공무부서는 Spare part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하고 관리부서에서는 자재 자체의 비용뿐 아니라 유지관리를 위한 비용이 들어가니 하나라도 줄이려고 한다.
공장을 운전한지 40년이 넘어도 아직도 적정재고, 적정 Spare part를 가지고 싸우고 있다. 또 한가지 Annual Shutdown (년차보수작업)이다. 수십 년을 했는데도 아직 데이터베이스가 없는 공장이 많다. 일상 정비했던 데이터와 연차보수작업 그리고 예방보전했던 데이터들이 관리된다면 전체 공장을 빠트리는 설비없이 관리가 되고 불필요한 작업은 안 하거나 주기를 늘려줄텐데,…
12척의 조선 수군이 울돌목에서 모든 것을 사용해서 싸운 후 바로 쳐들어오는 왜군에 대해서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예비군대가 없었고, 배를 수리할 수도 없었다.
스마트팩토리연구소
'생산관리와 설비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진제어기술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내 몸에 맞아야 좋은 것이다 (0) | 2019.11.25 |
---|---|
임진왜란, 아는 것이 곧 승리였다 (0) | 2019.11.22 |
나는 어떤 습관이 있을까, 바꿀 것은 없을까? (0) | 2019.11.07 |
플랜트 설비관리가 안되는 이유는 어디에 (0) | 2019.11.06 |
PM, Pdm, Pam과 TPM,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가? (0) | 2019.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