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7년 임진왜란이 종결되고 30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한반도는 또 침략을 당했습니다. 후금은 대비도 못한 조선을 침략해서 형제의 맹약을 하고 물러났습니다. 그 후 매년 후금에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요구는 늘어났고 조선을 힘들게 했습니다.
1635년 후금은 만주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 부근까지 공격하면서 황금·백금 1만냥, 전마 3,000필 등 종전보다 무리한 세폐와 정병 3만까지 요구해왔습니다. 또한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맹약’을 ‘군신의 의’로 개약하자고 요청해 왔습니다. 이를 들어나게 거역하지는 못했지만 유사한 모습이 노출되었고 사신에 대한 경계와 조공 거역을 했습니다.
1636년 12월1일, 청태종은 12만 병력을 끌고 쳐들어왔습니다. 병자호란입니다.
임진왜란 동안 전선을 따라다니며 수많은 고생을 했던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신 그 날 영의정에서 쫓겨났습니다. 선조와 같이 명으로 도망하려는 대신들이 내 쫓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류성룡에게나 조선에게는 나쁘지 않은 기회였습니다.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
낙향을 한 류성룡은 16권 7책의 징비록을 저술하였습니다. 다시는 조선 땅에 임진왜란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그러나 병자호란은 또 한번의 조선 백성에게는 피눈물나는 전쟁의 아픔을 주었습니다.
'작은 준비만 했어도 임진왜란은 막을 수 있었다.'
이이의 십만양병설의 일부를 시행하거나, 류성룡이 천거한 세명의 장수를 적시에 적절한 곳에 보내졌다면...
평상시에 주변의 정보를 살폈다면?
평상시에 제대로된 병법을 훈련했다면?
대장군 신립 장군이 조령에서 8000명으로 고니시를 막을 수 있었는데, 탄금대로 내려간 것은 최악의 실 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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